관리자 2025/06/26
연경당과의 첫 만남
처음 연경당(演慶堂)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텅 비어 있던 안뜰…….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을 처음 찾아간 날, 어슴푸레 안개에 뒤덮인 채로 스산하게 비어있던 연경당은 마치 아픈 과거를 가슴에 품고서 말 한마디 못한 채로 굳어있는 사람마냥, 바짝말라버린 유물로 서 있었다.
이 역사의 장소에 첫 발을 들여놓던 그 순간, 나는 연경당의 여기저기를 훑어보며 《순조무자진작의궤》에 묘사된 순조와 순원 왕후, 그리고 진지하게 생신잔치를 이끌어가는 효명세자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리고 역사속의 건축물인 연경당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숨결을 불어넣어, 연경당이 활기를 되찾게 만드는 것,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6월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의 연구원과 각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현장 스텝들은 의궤의 기록을 토대로 조선 순조 무자년(1828년)에 진작례(進爵禮)가 열렸던 그 날의 순간순간과 구석구석을 찾아내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순조 무자년에 이곳 연경당에서 열린 잔치는 공식적인 진작례는 아니었다. 순조가 왕세자에게 정무를 맡기고 뒤에 물러나 있으면서 치른 진작례로, 순원 왕후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잔치였다. 조선 후기에 궁중에서의 의례 가운데 규모가 큰 잔치인 진연(進宴)이나 진찬(進饌)에 사용되는 정재(呈才)는 그 종목 수가 대개 17종목으로 고정되는 양상을 보였고, 그리고 술을 올리는 절차는 7회부터 9회까지였다. 하지만 이 날 열린 행사는 비교적 소규모 연향인 진작례였기 때문인지 술을 올리는 절차가 3회 뿐이었다. 그것도 국왕과 왕비에게 올린 것은 제1작으로 셈하면 진주(進酒)는 2회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날 정재 17종목이 모두 초연된 점에 비추어 보면 무척 성대하게 치른 잔치였다고 하겠다. 왕비나 대왕대비 등이 연향을 받는 주체가 되는 내연(內宴)에서는 정재를 여기(⼥妓)가 연행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 날 잔치에서는 모두 무동(舞童)이 정재를 연행하였는데, 이는 이 진작례가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행사가 아니라 왕실 식구와 친인척 12명만이 참석한 가족 중심의 심연 연회였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홀기(笏記), 의궤(儀軌), 역사서 등의 문헌을 두루 살펴 연경당 진작례에 관한 사실 관계를 두루 고증하였고, 이제 연경당의 공간에서 벌어졌던 그 날의 잔치를 오롯이 재현하게 되었다. 이제 연경당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되살아난 역사의 공간이 될 것이다.
연경당 진작례 복원공연
2006년 6월 26일.
첫 번째 복원공연이 열렸다.
비어있던 연경당의 본채 앞마당에 대형 마루가 깔리고 대형 차일이 드리워졌다. 순조와 순원 왕후, 효명세자, 왕실의 친인척을 비롯하여 상궁, 내관, 악사들이 그 날처럼 하나 둘자리를 메웠다. 연경당은 손님맞이에 분주해지며 점점 유쾌하고 훈훈한 기운으로 채워졌다.
이 날은 왕권에 대한 외척들의 위협 속에서도 모후의 생일잔치를 엄숙하게 준비하여 왕권 강화에 대한 결기를 다지던 효명세자의 위엄 있는 모습을 감격스러운 눈물로 다시 만나게 된 날이었다.
돌이켜보면, 2006년 1차 복원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이제껏 복원하지 못했던 무동(舞童)의 의상과 〈춘앵전(春鶯囀)〉 무자의 의상을 복원한 일이었다. 이 잔치에서는 무동들이 정재를 연행하였기 때문에 의궤의 기록 그대로 무동들의 의상을 제작하였다. 특히 홀춤 〈춘앵전〉의 의상이 종래 보지 못한 자연미 가득한 우아한 모습으로 나왔던 순간의 놀랍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2007년에는 2차 복원공연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1차 공연에서 드러난 크고 작은 문제점을 보완하였다. 우선 춤을 추기에 알맞고 또 고궁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대형 무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춤의 종목에 따라 무대설비가 달라져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외주를 맡길 제작비용이 없고 대여도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기획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재학생들과 함께 의궤에 묘사된 그림을 보고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여 밤을 지새가며 직접 제작하였다.
2차 복원공연에서는 연두색 바탕에 아름다운 나비무늬를 수놓은 화려한 〈박접무(撲蝶舞)〉 의상이 큰 눈길을 끌었다. 또 〈향령무(響鈴舞)〉를 출 때, 한삼에 넣은 향령에서 울리는 신비한 소리가 연경당에 가득 울려 퍼지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2008년에 열린 3차 복원공연은 3년 동안 이어진 복원사업을 총괄하는 한편 그동안의 미비한 점을 찾아내 보완하는 작업에 집중하였다. 음악 방면에 대해서는 그 동안 고증한 내용을 잘 갈무리하였고, 무동이 직접 창사를 하던 방식은 원형대로 재현하게 연출하였다. 〈춘대옥촉(春臺玉燭)〉 등을 추는 무대는 기존 형태에 서 계단을 보완하여 홀기의 기록에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노력하였고, 정재에서 사용되는 의물(儀物) 중에서 보등(寶燈)과 당(幢)은 의궤의 기록에 따라 특별히 주문 제작하였다.
3년 동안 이어진 복원공연에서 함께 인연을 맺어 혼신의 힘을 다해준 총연출을 비롯하여 부문별 연출을 맡아준 정재국 선생, 그레타리 선생, 김해숙 선생, 박은영 선생, 서충식 선생님, 한복려 선생께 두루 감사드린다. 또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며 기꺼이 도움을 주신 의물의상디자이너 안정훈 선생, 〈연경당 진작례 복원공연〉의 프로그램북 제자(題子)를 써주신 여천 김정화 선생, 공연의 고증을 맡아준 사진실 선생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의궤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 그리고 기획팀과 스태프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랜 연구를 거쳐 재현한 행사이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앞으로 〈연경당진작례 복원공연〉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궁중문화 유산이 될 수 있게끔 그 완성도를 차근차근 높여나갈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왕실문화를 엿볼 수 있는 궁중문화콘텐츠로 개발하여 세계인에게 한국의 전통적 멋이 깃든 이 행사를 널리 알려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의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20주년 기념문집 《벚꽃 미소에서 매화 향기로》(2019. 8.)에 수록한 글이다. 원제는 〈역사 속의 창덕궁 연경당, 궁중연향의 문을 처음 열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