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25/06/26
“또 해냈구나!”
복원공연을 마칠 때마다 느끼는 소회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한 차례 한 차례 복원공연 때마다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演慶堂)은 자신의 속살을 내보이기를 어쩌면 그리도 수줍어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해 9월에 올린 복원공연 때는 태풍 링링이 거센 바람을 타고 한반도를 관통하여 일정을 헝클어 놓더니, 올해는 느닷없이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조바심을 끝을 모르게 키워만 갔다.
효명 세자(孝明世子)의 효심을 기리고자 당초 5월 8일로 계획했던 올해 복원공연은 몇 차례나 순연되다 가을이 이슥해진 11월 11일이 되어서야 스산한 공기 속에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올리게 되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올린 공연이었기에 이번 복원공연에서 느끼는 감회는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2020년 11월 11일 오전 11시, 가을 단풍이 저물어가는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본채 앞마당에서는 조선 시대 궁중의 생일잔치를 복원한 의례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풍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세계민족연구소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예술종합학교,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 서울국제문화교류회, 종로구의 후원을 받아 90여 년 전인 1828년 음력 6월 1일에 효명세자가 순조(純祖)의 왕후인 순원 왕후(純元王后)의 40세 탄신일을 축하하여 거행한 진작례(進爵禮)를 재현하는 행사였다. 진작례는 조선 시대에 궁중에서 잔치를 열 때, 임금에게 술잔을 올려 예를 표하던 의례이다.
연경당 진작례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왕실의 의례이지만 또한 음악, 노래, 춤, 음식, 복식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조선시대에 열린 어떤 연회보다 아름답고 격조 높은 예술적 연회였다. 특히 진작례에서 연행된 춤은 진작례의 백미로 평가된다.
당시 진작례를 주관한 효명세자는 국왕 내외에 대한 효심을 드러내고 부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국왕 내외와 외빈을 모시고 순원 왕후의 탄신을 축하하는 진연(進宴)을 열었는데, 효명세자는 전악(典樂) 김창하(⾦昌夏)와 함께 만든 향악정재(鄕樂呈才) 춤을 함께 연행하여 잔치에 흥을 더하였다.
이번 복원공연에서는 〈춘대옥촉(春臺玉燭)〉, 〈춘앵전(春鶯囀)〉, 〈박접무(撲蝶舞)〉, 〈무산향(舞⼭香)〉,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등 다섯 종목만 시연했다. 〈춘대옥촉〉은 주취금관, 자라포, 남사대에 백우호령과 백우엄요를 걸치고 학정대와 비두리를 입은 집당 2인과 무동 4인이 어우러져 춤을 추었고, 〈춘앵전〉은 중국이나 일본의 〈춘앵전〉과는 형식, 내용, 음악이 다른 창작춤으로,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 하파, 수대, 한삼을 착용하고 여섯 자 화문석 위에서 고도로 절제된 무태를 보여주었다. 〈박접무〉는 중국의 당나라 때에 매년 2월 화조일(花朝日)에 남녀가 어울려 나비를 잡던 풍속을 소재로 만든 춤으로, 범나비를 수놓은 녹라화접포를 입은 무동의 춤이 마치 나비가 나는 듯 화사하고 우아했다. 〈무산향〉은 침상을 닮은 대모반에서 추는 독무로, 복식과 춤사위가 〈춘앵전〉과 닮았고, 〈가인전목단〉은 모란을 꽂은 화반을 에워싸고 돌아가며 군무를 추었다. 조선의 궁중에서 펼쳐진광경이 2020년에 이르러 창덕궁의 후원에서 되살아나 춤추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1828년에 열린 진작례에서는 나라의 태평과 국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거나 즐거운 놀이와 아름다운 사랑을 묘사한 춤이 모두 17종이나 초연되었는데, 이는 우리의 궁중춤이 향악정재로 도약한 역사의 현장이자 전환점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민족무용연구소의 연경당 진작례 복원 공연은 2006년 6월에 처음 시작되어 지금까지 여섯 차례 공연이 펼쳐졌다. 옛 문헌 속에 깊이 잠들어있던 연경당 진작례가 오랜 세월을 넘어 연경당에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03년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학술팀이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를 국역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당시 성무경, 이의강 두 연구원의 제안으로 숨은 보석 같은 공간인 연경당을 찾아내게 되었고, 의궤를 국역하는 과정에서 진작례의 의례, 정재, 음악, 복식, 음식, 상화(床花), 의물(儀物), 무원(舞員) 등을 자세히 이해하게 되면서 복원의 기틀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에 연경당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의 현장에서 복원 공연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현장인 유형문화재는 사람의 숨결이 있어야만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다시 살아난다”며 간곡히 호소하여 심의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2006년 1월에 복원 공연을 승인받게 되었다. 2006년 6월, 마침내 1828년의 역사 속 공간에서 진작례가 처음 재연되었고, 이후 2009년 9월까지 연거푸 네 차례 복원 공연이 열렸다.
그 후 지난해에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20주년을 맞으면서 10년 만에 다섯 번째 복원 공연을 올렸다. 10년 만에 재회한 연경당은 여전히 고즈넉했고 쓸쓸함마저 느껴졌는데, 마치 “왜 이제야 다시 찾아왔느냐?”며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이에 연경당과의 재회를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며, “복원공연은 지속되어야 한다! 반드시 후세에 전해야한다!! 국내외에 널리 알려야 한다!!!”는 신념을 되새기게 되었다.
지난 열다섯 성상에 걸친 연경당과의 인연을 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많은 일이 있었다. 무더위 속에 치른 2007년의 복원 공연에서는 무거운 가체를 쓴 출연자가 더위에 쓰러지자 공연에 내빈으로 초대된 미국 영사의 부인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위기를 넘긴 일은 세월이 지났어도 눈앞에 선하기만 하다.
또 연경당 진작례는 우리의 궁중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니 세상에 널리 알려야한다는 사명감을 품고서, 2010년 11월에 국내에서 열린 G20정상회담에서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진작례를 보여주자는 기획안을 외무부에 제안하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비’는 야외 공연인 복원 공연을 위협하는 가장 큰 훼방꾼이었다. 가슴 설레며 준비한 첫 복원 공연 때는 폭우로 무대를 덮은 천막에 빗물이 고여, 천막이 무너져 내리지않을까 가슴 졸이던 모습이 아련하다. 지난 해 공연에서는 하필이면 공연 당일에 역대급 태풍 링링이 상륙하여 마음을 까맣게 태우더니, 정작 공연이 시작되는 11시가 되자 푸른 하늘이 화사한 얼굴을 내밀며, 마치 “돌아오기까지 10년이나 걸렸어?”라며 농을 치는 듯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가호와 성원이 있었기에 이제껏 연경당과의 인연을 이어온 듯하다.
올해 복원 공연은 앞선 몇 차례의 공연을 보완하여 올린 것이다. 무대 배치와 공연 절차 등은 모두 순조 무자년의 의궤에 기록된 것에 따랐지만 지금의 연경당은 옮겨 지은 것이어서 의궤의 기록과 똑같이 배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의궤의 기록대로 공간을 배치하고 동선을 맞추려고 애썼다. 그밖에 무대 공간을 연경당 본채의 대청과 앞마당으로 하여 대청에 국왕 내외의 자리를 만들고 찬상(饌床)을 배설한 것, 앞마당을 상하로 연행 공간을 나누어 사찬(司贊), 전찬(典贊), 전창(典唱), 궁인을 배치하고, 하부에는 공연무대를 설치하고 무자(舞者)와 악사를 배치한 것, 의례자, 악사, 무자의 대기소와 분장실은 정추문과 장양문의 밖에 설치한 것 등은 지금의 연경당 구조와 동선을 효율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지난해의 공연과 똑같이 배치하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지난 해 복원 공연까지는 등장하지 않았던 왕실 식구와 외빈이 잔치에 참석했는데, 의궤 등의 기록을 고증하여 앞서의 공연을 보완한 점이다. 이번에 더해진 참석인원은 세자빈을 비롯하여 명온공주, 숙선옹주, 숙의박씨, 영온옹주 등 왕실 식구와 순조의 자형인 영명위 홍현주, 사위인 동녕위 김현근, 장인인 영안부원군 김조순, 사돈인 지돈녕 조만영 등이다.
또 이번 공연에서는 왕실 인원 8인, 외빈 4인, 상궁과 내시 16인 등 총 28인의 복식을 새로 만들었는데, 20년이 넘도록 세계민족무용연구소와 인연을 맺어온 전통한복연구가 그레타 리[본명 이용주] 선생께서 맡아주었다. 이들 복식도 옛 문헌의 기록을 고증하여 만들었는데, 외빈 4인은 각각의 품계에 맞는 색깔의 관복을, 전창 상궁은 흑색 원삼을, 상궁 7인은 녹색 원삼을, 내시 8인은 녹색 관복으로 제작하였다.
올해 복원 공연의 포스터에는 한국무용사의 증인인 고(故) 김천흥 선생님의 모습을 담았다. 김천흥 선생님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학생들과 함께 하셨다. 당시 선생님은 〈궁중정재〉, 〈한국무용학원전강독〉, 〈동양무보법연구〉 등 우리 춤과 우리 춤의 역사를 가르치셨는데, 그 소중한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 이번 포스터에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담게 된 것이다. 선생님께서도 이 복원공연을 따뜻한 미소 속에 지켜보시리라고 믿는다.
이번 연경당 진작례 복원 공연은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아쉽지만 일반 관객의 관람은 허용하지 않는 대신 네이버 TV로 실시간 중계되었으며, 유관분야의 소수 관계자만이 특별 초청되어 공연을 관람하였다. 하루 빨리 정상적 일상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더욱 커졌다.
이번 복원 공연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사의 현장을 공연의 장소를 어렵게 내주신 나명하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 최재혁 창덕궁소장을 비롯하여 행사 진행에 큰 도움을 준 창덕궁의 백옥연 과장, 김형신 계장께 깊이 감사드린다. 또 궁중춤을 지도해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명옥 교수와 박은영 교수. 의상 고증과 제작에 힘써준 그레타리 선생님 그리고 여러 배우, 무용수, 악사, 스태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오랜 연구, 고증, 공연을 거치며 점차 완성도를 높여가는 세계민족무용연구소의 연경당 진작례 복원 공연은 앞으로 다른 궁중 연향의 재현이나 복원에도 본보기가 될 것이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행사를 역사의 현장에서 되살리는 일은 자못 의미가 크다. 잠든 궁궐 문화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춤과 사람들》 2020년 12월호에 발표한 글이다.